방패연 사랑
조정만(건축82)
제이오건축사사무소 대표 www.joarchi.com
건축사
친환경저에너지건축전문가
수석감리사
대한건축사협회정회원
한국건축가협회정회원
겨울은 바람의 계절이다. 겨울이 오면 따뜻한 양지에서 햇볕을 쬐며 친구들과 담소했던 어릴 적 기억이 새롭다. 몸 앞은 햇볕의 따스함을 느끼지만, 등 뒤에선 싱싱 소리를 내며 살을 에는 듯 칼바람 부는 겨울은 바람의 계절이다. 어릴 적 나는 바람이 불면 늘 설레는 마음으로 잎 떨어진 포플러 가지를 보며 바람의 세기를 가늠하곤 했다. 그것은 ‘바람이 불면 어서 빨리 연을 들고 나가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린 나에게 겨울은 추워도 여러 가지로 고마운 계절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내게 어느 계절이라고 고맙지 않은 계절이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추운 계절을 전혀 춥지 않게 보낸 것이 바로 연날리기, 썰매타기, 팽이 돌리기, 눈싸움하기 등 각종 놀이를 할 수 있어서였다. 또한 부엌에서 어머니를 도와 가마솥에 불 지피기를 겸한 난방용 군불 때기도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겨울의 추억이다. 그 겨울철 놀이 중 내게 가장 신나는 놀이는 연날리기였다. 지금도 나이 지천명을 앞둔 시점이지만 그 생각을 하면 가슴 뛰는 것을 주체할 수 없다. 내가 연을 처음 접한 것은 우리 집 옆집에 사는 기진이 형으로부터였다. 그 형은 손재주가 아주 뛰어나고 뭐든 잘 만들어 주는 형이었다. 옆집에 살면서 서로 밥 때가 되면 같이 밥도 먹고, 놀기도 같이 놀던 이웃사촌 형이었다. 그 형은 내게 가오리 연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줬다. 어릴 적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연이라는 놀이기구는 아버지께로부터 만드는 법을 전수받는 것이 보통인데, 나의 아버님은 연과는 인연이 없는 분이셨다. 그래도 난 그 형에게서 전수받은 가오리 연 만들기와 날리기로 어릴 적 초등학교 고학년 까지 겨울을 아주 재밌게 잘 보냈다. 우리나라의 연은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나의 시골에서 연은 크게 두 종류로 파란 하늘을 휘저었다. 가오리연과 방패연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가오리 연 하나 만으로도 겨울을 재미있고 신나게 보냈다. 가오리연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시절, 나는 방패연에 관한 아주 충격적인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당시 나의 생각은 방패연이란 동네 형들이나 어른이 날리는 것으로 생각하던 차였다. 그랬던 내게 뒷집에 사는 동네 어른이신 김 대수 어른의 연을 접하게 된 것이다. 김 대수 어른의 막내아들은 나를 이끌고 광(창고)에 걸려있던 자기 아버지의 방패연을 보여 주었다. 광문을 열고서 접한 방패연은 사실 내 키를 훌쩍 넘는 엄청난 크기의 연이었다. 이른바 대문짝 방패연이었다. 광문크기와 같은 그 크기에 압도된 나는 그 연 앞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얼어붙어 버렸다. 그리고 그 연에 그려진 빨간 새우 그림은 나의 어린 뇌리에 그대로 박혀 버린 사건이 되고 말았다. 왜 새우를 그려 넣었을까? 알 수 없었다. 연에 그려 넣는 그림은 주로 호랑나비, 청둥오리, 학, 용머리, 그리고 각양각색의 색동 색 문양 등이 주류였다. 왜 새우였는가? 그것은 나중에 성인이 되어 생각하건데, 새우의 휘어진 모양에서 나오는 몸체의 역동성 때문이었지 않나 추측하고 있다. 아무튼 그 사건 이후로 나는 가오리연 보다 방패연에 관심을 갖고 그 연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였다. 그 당시 우리 어머니는 ‘니가 연 만드느라 쓴 밥풀만도 몇 끼니는 족히 댈 것이여’라는 핀잔을 주셨다. 하지만 나는 연 만들기에 골몰했다. 왜 내가 만든 방패연은 날지 못하고 빙 빙 돌며 그저 맥없이 추락하는가? 나는 내가 만든 연과 대수 어른의 방패연을 머릿속으로 가만히 비교해 보았다. 도무지 알 수 가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내가 만든 무척이나 많이 어설픈 방패연을 대청마루에 놓고 밥을 먹고 있었다. 밥을 먹으며 곰곰이 연을 살펴 본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만든 방패연은 그저 평평한 이마 부분 머릿살에 ‘활벌이줄’만 감아 마치 활 모양의 커브만을 해놓았고 상상속의 대수어른의 연은 벽에 걸려있었지만 배불뚝이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즉 나는 밥을 먹다가 국그릇을 엎어 놓는 것을 상상하다가 그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밥을 얼른 먹은 나는 뒷집 동생을 불러 광문을 열고 한 번 더 대수어른의 대문짝 연을 살펴보았다. 내 생각이 맞았다. 그 이치를 안 나는 그 때부터 국그릇을 엎어놓고 연을 만들었다. 즉 댓살 중 X자 모양의 ‘장살’을 엎어 놓은 국그릇에 대고 밀면서 붙였다. 연은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운데 살인 중살도 그렇게 하고 허리부분의 살, 허리 살은 가장 앏게 다듬어서 배부름 정도에 맞추어 끼워 넣었다. 아, 위대할 손! 내가 직접 만든 방패연도 배불뚝이 연이 되었다. 연줄을 균형 잡아매고 날려 보니 방패연은 안정적으로 날았다. 하! 그 기쁨은 마치 내가 자전거를 처음 배우고 신작로를 달리던 그 기분과 흡사했다. 신작로는 눈 아래에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마치 나는 하늘을 나는 것 같던 그 기분! 아, 나의 방패연 날리기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윽고 연을 날리고 파란 하늘을 벗 삼아 겨울을 재미있게 보내 던 어는 겨울날, 뒷집의 대수 어른은 연을 날리며 어린 내게 또 한 번의 경이로움을 선물하셨다. 대수어른의 방패연은 너울너울 실타래를 풀며 파란 하늘에 멋지게 솟구쳐 올랐다. 그러더니 그 연은 그 상태에서 바로 급전직하하는 것이 아닌가. 어린 나는 그 연이 너무 커서 실이 끊어졌나 보다 하는 마음으로 연을 주우러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신발을 고쳐 신었다. 그러나 방패연은 땅으로만 너울너울 내려갔다가 마치 맹금류 송골매처럼 다시 하늘로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 기술은 연날리기 용어로 이른 바 ‘탱금질’이라는 기술이었는데 그 기술을 대수어른께서 직접 실연 하신 것이다. 그 ‘탱금질’은 이렇다. 연을 공중에 띄우고 연줄을 팽팽하게 한다. 그리고 얼레를 실의 직각 방향인 상태에서 연줄을 빠르게 감으면 연은 수직으로 오른다. 그 상태에서 얼레를 실 방향으로 돌리며 실 풀기를 급작이 하면 연은 실의 반력으로 바로 뒤집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속하여 왼손으로는 실을 짚고 있다가 동일한 간격으로 풀어준다. 그 실을 그렇게 튕겨주면 연은 땅을 향하여 내려오게 된다. 그것은 방패연 수직낙하 기술인 것이었다. 그리고 ‘탱금질’로 연의 머리를 좌측으로 기울이게 한 다음, 얼레를 빠르게 감으면 연은 좌측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종합기술이 ‘연 재주 부리기’였다. 어린 나는 대수 어른 방패연의 신기에 그저 입 벌리며 놀랄 따름 이었다. 그렇게 방패연은 위로 아래로 좌로 우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대로 조종이 가능한 연임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학교 역사시간에 임진왜란 시 이순신 장군께서 연날리기를 이용하여 예하부대 섬에 있는 휘하 장수들에게 문서를 전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탱금질’의 기술을 이용하면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현재 세계의 각양각색의 연을 다 살펴보아도 우리나라의 방패연처럼 마음대로 조종되는 연은 없다. 그 연의 재미에 흠뻑 빠진 나는 그 기술을 부지런히 연마했다. 그리고 그 기술을 익히면서 한 층 진일보한 연날리기 기술로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매 해를 보냈다. 물론 겨울에는 연날리기 이외에도 많은 놀이가 있었지만......
우리는 흔히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싸움구경이라고 하며, 동네에서건 TV에서건 싸움 구경에 열광한다. 그렇다. 연날리기에서도 연싸움은 존재한다. 연싸움의 진정한 백미는 ‘탱금질’을 활용한 연싸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중3이던 어느 겨울 나는 집 평 슬라브 옥상에 올라 여느 겨울과 같이 방패연을 올리며 그동안 익힌 ‘탱금질’을 이용하여 자유자재로 연을 날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뒷동네에 사는 친구 녀석의 방패연이 왼쪽 하늘에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서로는 방패연을 알기 시작하여 경쟁적으로 연을 날리던 사이였다. 서로는 자신의 기술을 하늘을 무대로 선보였다. 그러다 친구 녀석의 연이 나의 방패연 쪽으로 머리를 틀고 돌진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 나는 싸울 의사는 없었다. 친구 녀석은 자기의 ‘탱금질’ 기술로 하늘에 있는 내 연실을 감아서 자기 연을 수직으로 솟구치게 하여 나의 연실을 끊고자 시도하는 이른 바 ‘감아치기’ 전법을 구사하고자 접근하기 시작했다. ‘시방, 한 판 붙자는 것 이구만’ 속으로 생각한 나는 왜 이리 가슴이 쿵쾅쿵쾅 방망이질을 하던지 도무지 그 가슴 뜀에 흥분되어 얼레감기가 잘 않 될 정도였다. 이윽고 나는 친구 녀석에게 연싸움의 선수를 빼앗기며 녀석의 ‘탱금질’에 이은 ‘감아치기’를 허용하였다. 순간 나는 연실이 끊어져 가는 위기에 봉착했다. 거의 반사적으로 나는 후퇴하는 전법을 구사했다. 실이 팽팽해지면 위기다. 나는 내 실을 급속하게 풀어주었다. 이윽고 서로의 연은 엉키지 않았고 다시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와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바람 방향이 좌측 친구 녀석 방패연 쪽으로 불기 시작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호흡을 가다듬은 나는 ‘탱금질’을 이용하여 좌측으로 연 머리를 조종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친구 녀석이 구사했던 연을 수직으로 솟구치는 기법인 ‘감아치기’ 전술 보다 나는 그 반대의 전법을 구사했다. 그것은 내 연을 상대의 실위로 지나가게 한 다음 바로 수직 아래로 내려가게 하고 그리고 한 번을 더 ‘탱금질’을 하여 감은 다음 바로 연속적으로 ‘찍기’를 하기로 맘먹고 공격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친구 녀석을 쉴 틈 없이 몰아 붙였다. 이윽고 나의 방패연은 땅으로 곤두박질치며 상대의 연실을 갉아댔다. 순간 친구 녀석의 연은 마치 흰 머리를 휘날리며 날아가는 연기처럼, 연실을 풀어 헤치며 파란 하늘에 두둥실 날아갔다. 동네 꼬마들이 소리친다.
‘저 연 잡아라! ’ ......
겨울은 참으로 움직임이 적은 계절이고 모든 동식물들에겐 동면의 계절일 수 있지만 나는 이렇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놀 수 있는 우리의 계절 ‘겨울’을 사랑한다. 그리고 컴퓨터 게임 만이 전부인 것처럼 PC방과 거실 컴퓨터 앞에서 겨울을 보내는 아들에게 이 연날리기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고 싶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겨울 하늘은 눈이 내린 다음날, 청명하게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앞산과 뒷산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날, 바로 오늘 같은 날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우리 아들과 연싸움 한 판, 진하게 뜨고 싶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