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TV를 시청 하던 중, 나는 군대수색훈련동행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매우 가슴에 와 닿는 말을 들었다. “나의 군장은 아버지가 지셨던 짐 보다 가볍고, 나의 이 고통은 어머니의 산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부모님이 무척 생각나는 대목이어서 울컥 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나의 아버지는 건강하셔서, 무척이나 건강하셔서 오십 일곱에 나를 보셨다. 띠 동갑이신 어머니는 마흔 다섯에 나를 낳으셨다.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탄생의 기쁨과 귀여움과 사랑 보다는 부담일 수도 있었다. 내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난산을 거듭하던 어머니를 병원으로 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며 데려 가셨고,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 보람으로 어머니는 다시 사셨다. 그리고 나도 또한 그 아버지의 정성으로 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 때 내 눈에는 니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니 엄마 난산의 혼절만이 내 애를 끊게 했었지......” 그렇게 빛을 본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열심히 골목을 휘젓고 다니는 골목의 개구쟁이로 컸다.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키가 크셨다. 어머니와 키를 비교하면 띠 동갑의 나이만큼, 키도 가히 반 이상 차이가 나게 크셨다. 아쉽게 외탁을 한 나는 자라면서 아버지가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집안일이나 행사 참석하실 때, 아버지는 의관정제 하시고 멋지게 나가셨다. 그리고 한 말씀하셨다. “남자가 옷을 잘 입고 폼 나려면 마누라가 솜씨가 좋아야 한다.” 하시면서 날씬하신 모습으로 또 요샛말로 ‘스키니 한 모습’으로 옷을 입으시고,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멋지게 빠져 나가셨다. 나는 생각했다. ‘나도 군대 갔다 오고나면 아버지처럼 키가 클 것이다. ’......

아버지와 자전거의 추억은 그렇게 멋지게 골목을 휘돌아 나가고 세월도 그렇게 흘러갔다.

중학교 입학할 때였다. 그 때 부모님은 우리 집을 새로 짓는 역사를 하시게 되었다. 집을 짓기 시작하자 목수며, 일을 도우러 오신 아저씨들은 모두 자전거를 한 대씩 타고 우리 집 공사장으로 출근을 하셨다. 그 때 까지도 자전거를 배우지 못한 나는 일종의 자괴감으로 늘 자전거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하던 시기였다. 내 눈에는 아저씨의 자전거가 쏙 눈에 들어왔다. ‘기회는 이 때구나’ 생각하며 방과 후 나는 미장이 일을 하는 아저씨의 자전거를 잠깐 빌려 신작로에 나섰다. 그 때 용어로는 ‘신작로’는 이랬다. 차로는 2차로이고, 흙먼지 나는 길 위에 로울러로 다지고 다진 후, 아스팔트 펠트를 원액으로 깔았던 길이었다. 학교로 가는 길은 어린 내게 너무 먼 길 이었기에, 차가 많이 안 다니던 신작로가 자전거를 배우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더구나 아스팔트길은 자전거의 굴림감을 좋게 했기 때문에 핸들조작을 쉽게 터득할 수 있었다. 나는 자전거에 한 발만 올리고 핸들 균형과 브레이크 잡는 법을 배우고 처음을 그렇게 시작했다. 스스로, 혼자 배웠다. 커서도 무엇이든지 배울 때 혼자 열심히 반복하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밴 것이 아마 이 때부터 인 것 아닌가 싶다. 이윽고 자전거를 굴리고 외발로 타기를 반복하다가 자전거 가랑이 사이로 발을 넣고 타는 이상한 모습의 타기를 시도했다. 그것은 몸이 작은 아이들이 자전거를 안장에 오르기 전 삼각형 모양의 버팀대에 다리를 비스듬히 넣어 타는 것으로 일종의 자전거 타기인데 그러면서도 많이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됐다. 절반의 성공을 이룬 나는 이제 내일은 안장에 도전해 보자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다음 날 나는 안장에 오르기를 여러 번 시도한 끝에 마침내 자전거 안장에 올랐다. 그 순간 나는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희열감에 몸서리 쳤다. 아스팔트 길은 검었지만 내 눈에 마구 다가왔고, 바람은 귀에 상큼한 소리를 내고 지났고, 햇빛에 반짝이는 핸들은 나의 경이감에 더욱 기쁨의 빛을 제공해 주었다. 아 이 느낌은 무엇인가. 자전거는 내게 그렇게 신비롭게 다가왔다. 어느 덧 공사기간이 지나고 우리 집은 완공되었다. 기쁨으로 함박웃음이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돼지를 잡으셨다. 그 잔칫날 은 우리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고, 처음 맛보는 돼지 피 순대 맛은 내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첫 맛을 주고 집은 완성되었다.

세월은 흐르고 고등학교를 진학하던 나는 이미 아버지와 함께 늙어 버린 아버지의 자전거를 더 이상 탈 수 없었다. 몇 번을 고쳐서 쓴 자전거는 기어로부터 체인이 자주 이탈하면서 탈 때마다 내손을 늘 거멓게 지저분하게 했다. 자전거 통학을 하지 못하면 40여 분의 길을 걸어 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사춘기의 시절인 나는 그 때 그것이 무척 견디기 힘들었다. ‘왜 자전거 한 대 안사냐’며 떼도 쓰고 악다구니도 써 보았지만 자전거는 늘 그렇게 한 쪽 구석에 쳐 박힌 채, 먼지 먹기만을 거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당신께서 늘 강조하시던 한자(漢字)습득에 열을 올리던 나를 보셨고, 외삼촌에게서 들은 ‘막내가 한자를 잘 알구만요’의 소문을 듣게 되셨다. 아버지는 어느 날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시고 남원향교(鄕校)에 가자고 하셨다. 자전거도 시원찮은 마당에 향교를 가자고 하시니 나는 따라 나섰지만 내입은 볼멘 표정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향교에 도착하셔서 무언가를 관리인과 한 참 얘기 하셨다. 그리고 아쉬운 표정으로 집에 가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오시면서 말씀하셨다. ‘니가 한문을 좀 아는 것 같아서 향교에서 더 공부 좀 시키려고 했더니, 이제는 세상이 한문에 대한 무관심으로 학생이 없어서 안 받는다는구나’ 고 말씀 하셨다. ‘자전거나 새 걸로 좀 바꾸시지 한문은 무슨......’ 속으로 생각한 나는 별 감정 없이 다른 고교생처럼 공부에 열중했고, 대학에 진학했다.

아버지는 연로하셔서, 내가 군대에 입대하기 전 겨울에 돌아 가셨다. 그 해 겨울은 너무 추었다. 나는 군 제대 후 졸업해서 건축설계 일을 하고 결혼했다. 아들과 딸을 두었고, 경력이 차게 되어 건축사 시험을 치렀고 여러 번 낙방도 하였다. 어느 해 시험장을 빠져 나오면서 나는 뭔가 꽉 차는 듯한 감정에 휩싸였다. 한문을 그렇게 강조하시고, 공부하기를 그렇게 강조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차안에서 생각났다. 그 때 나는 아버지 어깨위의 짐과 현실과 그래서 자전거 보다는 책 한권이 시급하였던 시절이 겹쳐 생각났다. 그랬구나! 아버지는 자전거가 늙고 힘들었지만 아들을 위해 자전거 보다는 책을 공부를 더 원하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엉엉 울었다.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 아버지 지금 계셨으면 내가 시험 치르고 결과가 좋을 것을 두고 아버지는 너무도 기뻐 하셨을 텐데....... 아, 아버지는 내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지만, 세월은 야속하게 너무도 많은 시간차를 벌려 놓았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시고 골목길을 멋지게 나가시는 모습만을 내 가슴에 남겨 놓은 채 그렇게 가셨다.

어제가 아버지 기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어서 돈을 벌어 아버지 생전에 ‘신사용 자전거’ 한 대를 사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세월은 그 차이를 너무나 벌려놓고 흘러갔다. 이제 나도 사춘기 자녀를 둔 아버지가 되고 보니 아버지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다.

오늘 밤 내 꿈에 나는 아버지가 멋진 자전거를 타고 오시기를 기대한다. 고향 고샅길을 휘돌아 우리 집 앞에 끼익 하고 멈추시고, ‘막내야, 공부 열심히 했냐? 하시며, 웃으며 긴 발로 원을 그리며, 자전거에서 내리시는 멋진 우리 아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