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장선생님의 열린교육
 

글 | 김시우(19회 사학, 평택대학교 대우교수) 

1970년대 교육현장에서 있었던 일이 아직도 새롭게만 느껴짐은 우리나라 교육현장의 변화가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입만 열면 인성교육, 열린교육 등 다채로운 표현과는 달리 교실에만 들어가면 모두 점수 귀신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오늘날 교육의 위기는 이와 같이 철학부재의 교육정책과 교육을 출세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학부모, 사람의 가치마저 기능으로만 평가하려는 인문학적 가치의 상실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 교육, 매 드는 일 절대 있어서는 안돼

1970년 3월 2일 내가 교사로 출근을 하던 첫 날이 그 학교의 입학식이었다. 학부모들이 운집한 입학식장에서 교장은 당당하게 학부모들에게 요구했다.“이제 아이들의 교육은 우리학교에 맡겨주십시오. 우리학교의 교육목표는 학생들을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육성시켜 개성있는 하나의 인격체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목단꽃만 꽃이 아닙니다. 길가의 민들레, 찔레꽃, 패랭이꽃도 서로 다른 특색 있는 꽃들입니다. 모든 식물이 제각기 나름대로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이 사람도 하나의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되어 자기의 위치에서 사회에 봉사하고 필요한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학교 교육의 목적입니다.”라는 내용의 인사였다.

교장은 당시 나를 포함한 11명의 신임교사들과의 첫 면담에서“이 학교의 주인은 학생입니다. 선생님들은 주인인 학생이 올바르게 되도록 하는 도우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유능하고 노련한 조련사는 개를 훈련시킴에 매를 들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람이 사람을 교육함에 매를 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율적인 질서만이 질서입니다. 강제된 질서는 질서가 아닙니다. 질서를 생명처럼 중시하던 일본 군국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공설운동장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하려다 깔려죽고 부상당한 사람이 수십 명이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그렇게 비웃던 자유주의 교육을 받은 영국인들은 독일 U2기의 본토 공격 때 방공호에 줄을 서서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자율적 질서와 강제된 질서의 차이입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아이들 스스로 인격적 대우 받을 때 성장

그 교장은 학생들을 훈육함에 복장검사, 두발검사같은 외형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상에는 정장한 사기꾼이 있는가하면 장발에 모자를 비뚤게 쓰고 자유스런 복장을 한 예술가들이 얼마든지 있다. 모자를 바로 쓰게 하는 것 보다는 정신을 바르게 가지도록 하라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교사가 학생을 훈계하는 내용은 따지고 보면 자기를 닮지 않았거나 자기 생각과 다른 행동을 용인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을 훈계하거나 평가하는 잣대는 늘 동서고금을 통한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잣대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훈계하는 것은 훈육이 되지 못한다. 일벌백계란 일제가 남긴 군국주의 교육의 산물이란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지 전체를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도 가끔 교사의 체벌이 사회문제가 된다. 이는 대개 위압적으로 교권을 세우려 하는데서 발생한다. 교권은 원숙한 교사의 인격이 미숙한 학생에게 이해와 사랑으로 접근할 때 서는 것이지 위압적인 체벌로 서는 것이 아니다. 이제 교사의 매를 사랑의 매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은 없다. 우리 사회의 사제관계가 그렇게 변해 버린 것이다.

그 학교는 무감독시험, 무인판매를 실시한다. 이로 인하여 아이들은 스스로 인격적 대우와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어 가슴 뿌듯한 자긍심을 가지게 된다. 그로인하여 스스로 높은 단결력과 자율적 질서를 형성하고 애교심을 발휘하게 된다.

학교생활에 찌든 교육현장을 볼 때면 늘 그 교장의 교육철학이 신선하게 떠오른다. 그의 교육 철학은 인간 형성의 열린교육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교육자율화는 학습과 훈육을 학교와 교사에게 맡기는 교권자율이다. 현 정부의 교육당국이 추진하는 무한경쟁의 교육자율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