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놀이 ’

 

 

조정만 (건축공학과 82학번)

 

.제이오건축사사무소 대표 www.joarchi.com

-건축사

-친환경저에너지건축전문가

-수석감리사

-대한건축사협회 정회원

-한국건축가협회 정회원

 

 

 나의 물놀이 애초는 고향 냇가에서 초등학교를 갓 입한 한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 냇가는 남원 ‘요천’이다. 요천의 냇물 중 하나는 지리산 정상에서 발원하여 산 북사면 계곡을 타고 내려와 남원시 주천면 달궁을 거친 물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 물은 전북 장수 백운산에서 발원하여 장수 읍내를 돌아 내려온 물이 있는데, 그 두 물이 합수하여 생긴 냇가가 바로 ‘요천’이다. 그 물은 남원 시내를 동서로 가로 질러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내 고향 요천은 섬진강의 상류 중 하나인 것이다. 그곳에서 여름이면 나는 친구들과 함께 수영복이라는 호사스런 옷 없이 소위‘삼각빤스’(팬티)하나 걸친 채 놀았다. 놀다보면 온몸은 구릿빛으로 타고 빤스는 물기가 마를 날 없어 그야말로 전형적인 촌놈의 모습으로 여름을 보냈다. 나에게 요천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놀이는 ‘말바위’라는 바위에서의 멱 감기와 냇가 여울에서 피라미를 잡는 일, 그 둘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피라미를 잡기 위해 양팔을 벌리고 좌로 발짓과 함께 한 번 굴리고 우로 한 번 굴리며 피라미를 쫓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잘 잡는 친구들은 피라미가 지칠 때 까지 쫓아가 돌 틈에 쉬고 있는 녀석들을 맨손으로 잡아 올리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이 상당히 좋아야 한다. 여울에 피라미를 발견하고 쫓아야 하며, 여울물에 비치는 햇살의 반짝임과 녀석들의 은빛 비늘을 구분하여야 하고 결정적으로 어느 돌 틈에 녀석이 숨었는지 발견해야 하므로 그 피라미 잡이는 출중한 시력과 순발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그렇게 잡은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친구 중 ‘깽변’(남원에서는 강변을 ‘깽변’이라고 함)에 사는 봉식이라는 친구는 그렇게 많이 잡아 늘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때부터 피라미를 잡기 위해 많은 탐색을 하고 동네 형들이 잡는 것을 어깨 너머로 배우고 그렇게 저렇게 노력하였던 것이 나의 낚시의 시초가 된 것 같다. 당시 피라미를 잡기 위해선 피라미가 좋아하는 날파리 모양의 낚시가 제격이었다. 손수 꺾은 대나무 낚시 대에 낚시 줄을 달아 날파리 또는 날곤충 모양의 미끼를 냇가 상점에서 구입하여 여울에 홀리면 운 좋게도 피라미가 달라 붙었는데, 그 때의 손맛 또한 어린 나에게는 무척 좋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잡으면 떨구지 않기 위해 비닐 재질의 비료 푸대에 삼각 받침 주머니를 만들어 받쳐 들고 해가 저물 때 까지 낚시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 물놀이에 심취해 있던 나는 한 가지 새로운 발견과 경이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어느 타지에서 낚시 원정을 온 아저씨 때문 이었다. 그는 야전 전투복 차림에 얼룩무늬 낚시 자켓을 걸치고 릴이 달린 길이가 자그마한 낚시 대를 들고 있었다. 미끼를 피라미 모양의 철로 된 은빛 숟가락 모양의 도구로써 여울을 훑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촌놈인 내 눈에는 그야말로 새로운 도구의 발견이었다. 피라미 낚시만을 즐기던 나에겐 새로운 경지의 모습이었다. “아저씨, 그 걸로 시방 뭘 잡는다요?”나는 물었다. 아저씨는 선글라스를 낀 검게 탄 얼굴에 흰 이빨을 드러내며 “쏘가리!” 이 한마디만 외치고 여울에서 여울로 멋지게 훑고 지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기억은 요천수에서 나와 친구들이 쏘가리 구경을 하지 못하였기에, 우리에게 더 이상의 감흥을 주지 못하고 아스라이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그렇게 여름은 나에게 매번 시원한 물놀이와 피라미를 제공해 주고 고맙게 흘러갔다. 고등학교 때 낚시에 관한 추억은 여름휴가차 고향에 온 셋째 형과 오수 저수지에서 붕어를 잡은 것이었다. 장마가 끝난 그 해 여름 붕어를 살림망에 가득 잡아온 기억을 끝으로 정든 내 고향 남원에서의 낚시는 그렇게 끝났다. 세월은 강물같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들과 딸을 둔 아내와 나는 막내가 세 살 되던 때부터 좋아하던 물놀이를 모두 같이 새로 시작했다. 아내는 다슬기 잡이를 하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나는 옆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약간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피라미를 잡곤 했다. 그러던 20세기 말 어느 여름, 우리 가족은 나의 ‘전주예수병원 건축 감리업무’때문에 전주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 해 여름 주말에 우리 가족은 섬진강 상류 강가에서 여느 여름처럼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옛날 남원에서 보았던, 얼룩무늬 자켓 아저씨 같은 모습의 낚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허리춤에 꺽지라는 물고기가 전리품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옛날 남원에서의 기억과 함께 강에도 그렇게 큰 물고기가 잡힐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품고 있던 나에게 그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 날부터 나는 시간이 나면 루어낚시에 관한 책을 사가지고 각종 정보와 서적을 번갈아 보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루어(Lure)란 영어로 ‘가짜미끼’라는 뜻이고 내가 어릴 적 남원 요천에서 처음 본 피라미 모양의 은빛 낚시 도구는 ‘스푼(Spoon)루어’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벌레 모양의 ‘웜(Worm)루어’ 등도 공부하였다. 공부를 하고나니 이제 강에 나가서 본격적으로 쏘가리 사냥을 하여야겠다는 욕구가 불끈 솟았다. 그 해 초가을에 나는 섬진강 압록마을 예성교 다리 밑, 바위가 산재한 강가에 도착하여 쏘가리를 본격적으로 낚기 시작하였다. 웜 루어를 이용하여 쏘가리를 처음 잡았던 기억은 너무나 생생하다. 처음 잡을 때 그 감흥은 ‘이건 뭐, 마치 물먹은 통단무지를 걸어 올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녀석은 아주 결사적으로 발악하며 물속으로 ‘쿡, 꾹, 국’ 박아댔다. 내 팔은 그 녀석의 몸놀림을 감당하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반면 나도 양손에 온 힘을 다해 릴을 감아 올렸다. 잡고 꿰미에 꿰려고 하니 녀석은 등에 있던 가시를 번쩍 세우고 황금 빛 테두리를 한 기세등등한 눈빛으로 날 보았다. 그리고 황금색 바탕에 온 몸에 표범 무늬 같이 촘촘하고 빼곡히 들어찬 찔레 꽃 문양을 한 그 녀석은 강계 생태계의 최고봉 자태 그 자체로 보였다. 그것은 내 온 몸에 소름을 돋게 한 사건이었다. 다시 돌이켜 기억하건대, 내가 녀석을 걸어 두근대는 나의 심장 박동과 함께 릴을 정신없이 감아대면, 녀석은 온 몸체를 둥글둥글 돌리며 강물 속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따라왔다. 이윽고 강어귀에 도착하면 아주 발악적으로 저항하며 나의 팔과 가슴에 전해주었던 묵직했던 그 손맛....... 아, 이것이 나의 쏘가리 첫 경험이었다. 그 때 이후 섬진강 압록마을 예성교 다리 밑 부근 큰 바위 터는 내겐 전설이 되었다. 많은 쏘가리를 낚았고 그 때의 푸짐한 추억은 매운탕의 얼큰함과 같이 그 묘미를 더해 주었다.

 그 이듬해 전주에서의 일을 마치고 서울로 온 나는 충북 영동에 빌딩 일을 수주하여 영동으로 주1회 출장을 가게 되었다. 영동으로는 주로 토요일에 내려가는 상황이었다. 아침에 도착하기 위해, 고속도로 정체를 피하기 위해, 나는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그래서 영동에 도착하면 보통 6시 일출 후였다. 그러면 나는 금강이 굽이쳐 흐르는 강가에서, 물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르는 강가에서 새벽 낚시를 하였다.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해가 떠오르면 나는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자연을 내 몸 구석구석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그 자연에 감사했다. 새벽 장을 보고 난 후, 오전 9시부터는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고단한 몸을 점심 식사 후 꿀 맛 같은 오수를 즐기면서 해소하였다. 또 점심 후 오후 5시까지 일을 보았다. 이윽고 저녁에 서울로 오는 길에 일몰 전 까지 약 두어 시간 낚시를 하곤 했는데 그러나 그곳에선 섬진강만한 재미는 못 보았다. 갓 생긴 용담댐의 찬물 여파와 물 밑의 수초, 부영양화 등의 미운 단어들이 내 낚시의 재미를 완전 반감시켰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스푼루어’를 본격적이고, 시범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웜루어’는 철재 지그헤드를 이용한 바늘에 말랑말랑한 소재를 사용하여 만든 마치 미꾸라지나 강 바위 속에서 사는 곤충 유충모양을 본 떠 만든 것을 미끼로 사용한다. 그 미끼는 쏘가리의 좋은 먹잇감을 흉내 내어 만들어 녀석들이 잘 걸려드는 미끼였다. 하지만 나에겐 대물 보다는 월척 이하의 녀석들이 잦은 마릿수로 잡히곤 했다. 반면 ‘스푼루어’는 ‘웜루어’ 보다 비교하여, 아주 훨씬 멀리 강 저 너머 근처까지 30여 미터 이상을 날리는 맛이 있었다. 그리고 바람에 머리를 풀고 날아가는 낚시 줄의 실루엣은 마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보았던 플라이 낚시의 그것과도 같기에 나는 스푼루어를 머얼리, 아주 머얼리 그리고 힘껏 강 저 너머 근처로 날리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어느 덧 쏘가리 낚시 십년 차에 접어들 즈음, 아들은 고1, 딸은 중3이 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커서 물놀이를 좋아하지 않고 다만 그들 또래의 친구들과의 새로운 놀이에 그리고 시험공부에 열중이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비 품안을 떠난 각자 하나의 인격체였다. 나는 이제 아이들과 같이 물놀이를 가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란 후 나의 낚시는 소강상태였다. 쏘가리는 일이 마무리된 영동 금강에서도, 아주 가끔 힘들게 운전하고 가던 섬진강에서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의 낚시는 이제 나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환경이 찌들어 감에 따라 그리고 아이들의 무관심 속에 늙어 갔다.......

 그러던 차 나는 다슬기가 사람 간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내용을 매스컴을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옛날 어머니와 동네 아줌마들이 함께 모여, 여름 날 오후에 요천으로 다슬기 잡이를 갔던 기억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슬기 잡이가 중년 및 노년 여성들에게 이른 바 요즘 유행하는 ‘웰빙 스파’기능이 있다는 정보를 또한 접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도 어릴 적 물에서 놀다보면, 물놀이 전 축구를 하다 다친 근육이나 멍든 곳 등 상처가 났던 곳이 씻은 듯이 나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요즘 용어로 말하면 ‘스파’ 기능이 있다는 것으로, 현세의 나의 뇌리는 맞추어져 갔다. 그래서 올 해부터 나는 중년에 접어든 아내와 함께 다슬기 잡이에 나서게 되었다. 그래서 다슬기 잡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던 차 금산의 금강 어느 한 자락 다리 밑 주변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여 그곳에 도착하였다. 아내와 나는 다슬기 잡이를 하였다. 그러다 진력이 난 나는 하릴없이 묵은 낚시 대를 꺼내들고 금산 금강에 스푼을 날렸다. 원래 쏘가리는 낮에는 잘 안 잡히므로 큰 기대 없이 스푼을 날리고 수초를 걷어내곤 하였다. 그러나 나의 그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린 사건이 그 날 일어나고 말았다. 수초를 걷어 내던 ‘스푼루어’는 이윽고 쏘가리를 연거푸 걸어 올리고 있었다. 그 여름 날 저녁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나에게 아주 기록적이고 경이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마실 나온 동네 아줌마가 다리 위에서 이 광경을 보고 소리친다.

 

“우와, 아저씨, 너무 멋져요!!”

 

 녀석들의 크기가 월척을 훨씬 넘기고, 마릿수로는 두 꿰미를 채운 일대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렇게 올해 여름, 우리는 다슬기도 잡고 ‘웰빙 스파’도 하고 또 묵직한 손맛을 보기 위해, 그 물 맑은 곳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이제는 ‘웰빙의 컨셉’그리고 ‘가족 간의 정’이 흐르는 그리고 강자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 맑은 그곳 금산을 자주 가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