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글 | 전영칠 동문(임학 75, 시인)

인간의 역사에 별같이 무수한 이데올로기가 왔다간 사라졌다. 이것 저것 섞어 이데올로기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기 바쁘게 다음 이데올로기가 다시 밥을 짓는다. 그들은 늘 주인처럼 왔다가 손님처럼 간다. 머리 아프다 느낄 땐 나는 산으로 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프든 아프지 않든 산으로 가길 원한다.

몇 남지 않은 자연 중 하나 - 지금 산은 섬처럼 떠있다. 그 섬 속에(가급적 사람 적은 곳에) 앉아 있으면 괜히 감화가 돈다. 산은 의사다. 치유의 능력은 가히 원색적이다. 산은 사기치지 않으며, 거짓말 하지도 않는다. 산은 간음하지 않으며, 도적질하지도 않는다. 산은 스스로 10계명을 지킨다. 그러기에 모세가 10계명을 산에서 받았음 직도 하다.

산은 위선도 위악도 없다. 그저 그렇게 산다. 산은 헌법도 없다. 법률도 없다. 허락 받지 않은 곳에 주차하였다고 딱지 끊지도 않는다. 딱지 끊을 자도 딱지 끈길 자도 없다. 그저 그렇게 산다. 언제나 딱지 끊는 자는 사람이지 산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이 포크레인으로 산에게 금 긋고 딱지 끊는다. ‘사람들’은 무례하다. ‘사람들’은 실로 무도(無道)한 경우가 적지 않다.

도시에서는 하나의 뇌가 더 필요하다. 대뇌, 중뇌, 소뇌, 간뇌 외에 거짓말탐지뇌라는 제5의 뇌를 머리 한쪽에 달고 살아야 한다. 뇌를 하나 더 달고 다니니 머리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머리 무거울 땐 산으로 간다. 산에서는 제5의 뇌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산에 가서 가뿐하게 산의 이데올로기를 듣는다. 산은 교육자 없는 교육으로, 박사 없는 박사로, 돈이나 총칼 필요 없는 이데올로기로, 보이지 않는 글로, 권위 없는 권위로-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 말을 대신한다.